밥 돌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미합중국 연방 상원의원 로버트 조지프 돌 3세 Robert Joseph Dole III | |
출생 | |
국적 | |
배우자 | |
자녀 | 슬하 1녀 |
학력 | 워시번 대학교 (B.A., LL.B.) |
종교 | |
최종 계급 | |
정당 | |
상훈 | |
경력 | 미국 육군 대령 (1942~1948) 캔자스 주 의회의원 (1951~1953) 캔자스 러셀 카운티 검사 (1953~1961), 캔자스 주 연방 하원의원 (1961~1969)[4] 캔자스 주 연방 상원의원 (1969~1996)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1985~1996) 1996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1996)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본명은 로버트 돌로 캔자스 주 출신. 2차대전에 참전했다 포탄에 맞아 오른쪽 어깨에 큰 부상을 입고 이후로 오른팔을 거의 쓰지 못하게 된다.
1976년 부통령이던 넬슨 록펠러가 다음 대선에 부통령으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 바로 직후의 대선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의 지미 카터-월터 먼데일 조에게 패배한다.
1988년 대선 경선에선 초반에는 몇몇 주에서 승리를 거두며 뭔가 될듯 했지만, 평가가 나쁜 포드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단 점이 약점으로 다가왔고 가족을 겨냥한 네거티브 공세에 미숙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당시 부통령에게 완패한다.
이후로도 정계활동을 계속하며 공화당을 이끌다가 1996년 대선에서 후보로 선출된다. 이때 그의나이 73세.송해보다 나이가 많다. 그러나 빌 클린턴 대통령이 경제 성과로 인기를 얻고 있었기에 패배한다. 패배 직후 정계를 은퇴. 몬태나와 조지아, 콜로라도를 탈환했으나 애리조나와 플로리다를 뺏기면서 참패.
극적인 인생과는 별개로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은 일이 드물었고, 1996년 대선 출마를 제외하면 스포트라이트 밖의 인물이었다. 2018년 다시 화제가 되었는데, 한때 정적이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장례식에 고령의 몸을 이끌고 와 불편한 몸으로 경례를 하는 장면이 지켜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1976년 부통령이던 넬슨 록펠러가 다음 대선에 부통령으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 바로 직후의 대선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의 지미 카터-월터 먼데일 조에게 패배한다.
1988년 대선 경선에선 초반에는 몇몇 주에서 승리를 거두며 뭔가 될듯 했지만, 평가가 나쁜 포드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단 점이 약점으로 다가왔고 가족을 겨냥한 네거티브 공세에 미숙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당시 부통령에게 완패한다.
이후로도 정계활동을 계속하며 공화당을 이끌다가 1996년 대선에서 후보로 선출된다. 이때 그의나이 73세.
극적인 인생과는 별개로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은 일이 드물었고, 1996년 대선 출마를 제외하면 스포트라이트 밖의 인물이었다. 2018년 다시 화제가 되었는데, 한때 정적이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장례식에 고령의 몸을 이끌고 와 불편한 몸으로 경례를 하는 장면이 지켜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3. 선거 이력 [편집]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필요시 선거인단) | 당선 여부 | 비고 |
1950 | 캔자스 주 하원의원 선거 | 캔자스 81구 | 2,576 (58.83%) | 당선 (1위) | 초선 | |
1960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캔자스 6구 | 62,335 (59.25%) | 당선 (1위) | 초선 | |
1962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캔자스 1구 | 102,499 (55.83%) | 당선 (1위) | 재선 | |
1964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113,212 (51.16%) | 당선 (1위) | 3선 | ||
1966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97,487 (68.63%) | 당선 (1위) | 4선 | ||
1968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캔자스 | 490,911 (60.08%) | 당선 (1위) | 초선 | |
1974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403,983 (50.85%) | 당선 (1위) | 재선 | ||
1976 | 39,148,634 (48.02%, 241명) | 낙선 (2위) | ||||
1980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캔자스 | 598,686 (63.76%) | 당선 (1위) | 3선 | |
1986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576,902 (70.05%) | 당선 (1위) | 4선 | ||
1992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706,246 (62.70%) | 당선 (1위) | 5선 | ||
1996 | 미합중국 | 39,197,469 (40.71%, 159명) | 낙선 (2위) |
4. 기타 [편집]
현재는 공화당 내 온건파로 평가받지만 이건 공화당 보수화의 영향이고 활동 초기에는 보수파 인사로 분류되었다. 단적으로 2016년 대선에서 당시 생존한 역대 공화당 대선 후보[6] 중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가 후보로 공식 지명된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도 생존한 전직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참석했다.#
아내 엘리자베스 돌 역시 노동부, 운수부 등 다수의 연방정부 장관 직, 미 적십자 연맹 총재, 노스 캐롤라이나 연방 상원의원 등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다.
빌 클린턴과 함께 미국 대선 사상 최초로 대선용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한 정치인이다. 이 영향이었는지 이보다 1년 뒤에 열린 한국의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각 후보가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세몰이를 했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친분이 있는데, 정치적 의견을 떠나서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으로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다고 밝힌 적 있다.
아내 엘리자베스 돌 역시 노동부, 운수부 등 다수의 연방정부 장관 직, 미 적십자 연맹 총재, 노스 캐롤라이나 연방 상원의원 등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다.
빌 클린턴과 함께 미국 대선 사상 최초로 대선용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한 정치인이다. 이 영향이었는지 이보다 1년 뒤에 열린 한국의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각 후보가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세몰이를 했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친분이 있는데, 정치적 의견을 떠나서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으로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다고 밝힌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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